2023년 8월 1일, 부산에 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은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인스타그램에 언론사 취재 인력들을 위한 배지 신청 접수를 개시한다는 포스팅이 올라온 날이었다. 나는 영화평론가 일을 시작한 후 매년 이 배지를 신청해 소정의 혜택을 받았었지만, 받으면서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내가 이 배지를 통해 실제로 진정한 의미의 취재 활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나는 내 멋대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들만 보며 논 것이었지, 누군가의 원고 청탁을 받아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쉽게 말해 나는 영화평론가로서 부산 영화제에 참석하긴 했지만, 거기서 본 영화들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영화평론가답게 평론하지 않았다. 뭐 내 개인적으로 평론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관련하여 세상에 공식적으로 무언가를 발표한 적은 없었다. 물론 꼭 그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떳떳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매번 가면서도 정말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한국의 영화 애호가들의 최대 이벤트인 부산영화제에 도저히 가지 않을 수는 없으니, 기왕 가는 거 당당하게 일로 가고 싶다고.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이 축제를, 나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부산에 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한 생각이고, 심지어 영화평론가 일을 하기 전부터도 했었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마음은 예년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느 정도였나면 일 때문이 아니라면, 일이 없다면 부산에 아예 가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었다. 그 정도로 부산에 일로 가고 싶었고, 동시에 그 정도로 부산에 가고 싶지 않았었다. 나는 어쩌다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몇 개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8월로부터 3개월 전인 5월이다. 5월은 한국의 또 다른 큰 영화제인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던 시기였다. 이즈음에 나는 씨네21 특집 기획이었던 ‘젊은 비평가 대담’에 참여했었다. 대담이 있던 날은 전주 영화제가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이었기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젊은이’는 대담 전후 잡담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전주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중 한 젊은이가 나에게 물었다. “전주 가시나요?” 나는 위에서 말한 떳떳하지 않은 마음을 애써 숨기며 ‘짧게만’, ‘그냥 놀러만’ 갔다 온다고 답했다. 문답은 자연스레 턴을 넘겨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이 전주 영화제에 ‘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느꼈던 기분을 잊지 못한다. 화가 났다. 그 두 사람에게 절대로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지만, 이렇게 동등한 테이블에 모인 세 평론가 중 나만 영화제에 아직까지 놀러 가고 있다는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둘 중 한 명은 나보다 경력이 꽤 긴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머지 다른 한 명은 나와 큰 차이가 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나에 비해 못한 사람이 나보다 더 먼저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세상이 짜증 났던 것이 아니라, 아직도 세상을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속없이 아주 작은 영화평론가 혜택에 만족하며 영화제에 놀러 가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동안 엄마한테 ‘영화제 간다’고 하면 엄마는 내가 일하러 가는 걸로 착각하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정정하지 않는 나 자신이 떠올랐고, 그 길로 집에 돌아와 길게 갈 예정이었던 전주 영화제 일정을 2박 3일로 줄였다.
2박 3일은 내가 영화제를 갔던 일정 중 가장 짧은 일정이었다. 짧지만 길게 느껴졌던 그 기간 동안 내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던 말이 있다. "다시는 영화제에 혼자 일 없이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다짐을 나 혼자만의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서울에 있는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 심경을 전했다. 늘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애인은 이번에도 나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그러나 과연 나의 모든 상황을 100%로 이해했을까. 말하자면 애인은 내가 곧 있을 부산 영화제에 또 한 번 일 없이 놀러만 간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따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따지는 사람만이 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그게 가능한 건 타인이 아닌 나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8월 1일 업로드된 부산국제영화제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보았을 때. 잊고 있던 5월의 김철홍이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물었다. 철홍, 올해도 부산에 놀러만 갈 거야? 내 대답은 “아니, 절대”였다. 아니, 절대 안 갈 거야. 가 아니라, 아니, 절대 일로 갈 거야.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