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건 일부 평론가들의 ‘무성 영화’에 관한 이론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유성 영화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소리가 영화의 예술성을 헤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에 그와 관련된 모습들이 묘사되기도 했었는데요. 유성 영화 경시론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위대한 무성 영화들이 소리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저 이미지의 움직임만으로 감정과 사연을 완벽히 전달했던 것에 반해, 유성 영화들은 직접적인 대사와 소리들을 사용하여 간편하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해버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주장은 지금은 거의 무의미한 이야기가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여전히 무성 영화가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아예 말이 안 되는 주장인 것도 아니기는 합니다.
아무튼 제가 자막 없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기로 결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내가 이 영화를 자막 없이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느끼게 된다면, 이 영화는 정말로 좋은 영화일 것이다, 라는 질문. 또는 유성 영화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 같은 사람이 ‘무성 영화적’ 영화 경험을 한다면 어떻게 느끼게 될까 하는 실험의 답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실험의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리액션들, 그에 맞춰 격동하는 이상한 세계를 바라보는 동안 저의 마음이 분명히 움직인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며 여행을 했다면 경험할 수 없었던 느낌. 계획대로만 시간을 보냈다면, 아니 계획대로만 살았다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이 작은 실험을 통해 맛볼 수가 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물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닐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절대, 누군가 자신이 만든 영화를 대사를 알아먹지 않은 채 보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일까요. 대사 없이 영화를 소비하면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개인적 대답을 찾아내는 이상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 계속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 제멋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