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원데이원무비는 오랜만에 한국 영화를 다룹니다. 어떤 영화인지 말씀드리기에 앞서 먼저 올릴 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알아차린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나름 원데이원무비에서 다루는 영화들 간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중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밸런스는 주인공의 성별입니다. 무엇보다 원데이원무비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는 매 호의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주인공의 성별이 대부분 남성인 모습을 연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와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번갈아서 선택하려고 노력을 했었구요. 그 결과 지금 대충 후루룩 살펴봐도, 꽤 치우치지 않은 괜찮은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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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그와 관련해서 요즘 꽤 오랫동안 불편한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요. 원데이원무비가 다뤘던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 간 밸런스의 심각한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발송된 원데이원무비 67호 전, 가장 최근에 한국 영화를 다뤘던 원데이원무비는 바로 57호였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미확인>을 다룬 회차였죠. 그런데 그것도 심지어 개봉작이 아니었구요. 개봉작으로 치면 53호에서 다룬 <길복순>이 최근이긴 한데, 이 역시 넷플릭스 공개 작품이라 애매하긴 합니다. 그러니까 원데이원무비 ‘한정’으로만 따져보자면, 다룰만한, 소개할 만한 한국 영화가 부족한 상황인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원데이원무비의 이 상황이 꼭 괜찮은 한국 영화가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원데이원무비의 기준 중 중요한 하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깊숙이 숨어 있는(자의든 타의든) 영화를 소개하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해 제 의견을 드린 다음, 그 답장을 기대하는 것이 이 레터를 쓰는 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괜찮은 한국 영화들(특히 작은 규모로 개봉하는 영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레터의 사정상 이곳에 담지 못했던 것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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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는 <리바운드>입니다. 극장 개봉 당시에도 꽤 괜찮게 본 편인데,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리바운드>를 얘기하기에 앞서 한국 영화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까닭은, <리바운드> 속 다섯 명의 주인공을 보며 한국 영화의 현실이 떠올라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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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는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가 2012년 전국 대회에서 기적적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작은 농구부에서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선수들로 일궈낸 승리라니.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다소 흔한 스포츠 영화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이 실화는 당연히 정말로 특별한 기적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기적의 핵심은, 이들이 교체 멤버 없이 오직 다섯 명으로 힘든 토너먼트 과정을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다섯'이라는 '작은 숫자'가 한국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한국 영화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최근 몇 편의 한국 영화가 전 세계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한국 영화의 위상이 올라가 우리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은 맞습니다. 이 상황을 <리바운드>로 비유하자면, 한국 영화는 '전 세계 대회' 토너먼트에서 '교체 멤버(감독)가 많은 다른 나라의 영화'들을 꺾고 정말 기적적으로 우승에 근접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교체 멤버 없는 주전 단 다섯 명 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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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뤄낸 다섯 명(+1)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천기범. 배규혁. 홍순규. 정강호. 허재윤. 정진욱. 이건 <리바운드> 속 실제 주인공들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영화감독 다섯 명을.. 봉.... 박... 홍.. 그리고 ..
여러분은 확실하게 떠오르는 다섯 명의 이름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세 명 외엔 잘 떠오르지 않는데요. <리바운드>의 마지막 경기에 남는 선수도 결국은 세 명입니다. 다섯 명 중 두 명은 농구 규칙인 5반칙 룰에 의해 퇴장을 당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 부분을 자막으로 처리합니다.
허재윤은 4쿼터 6분, 5반칙 퇴장을 한다.
그로부터 2분 후, 홍순규도 5반칙 퇴장으로 물러났다.
그 이후 교체 멤버가 없는 부산 중앙고는 3명이서 4쿼터를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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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는 과정은 다소 아쉽지만 그 마지막만큼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저 자막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는데요.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을 때도 눈물이 찔끔했었는데, 이번에 넷플릭스로 다시 보는데도 또 한번 감동이 느껴지더라구요. 자막 자체로만 보면 뉴스 단신에나 나올법한 건조한 팩트 한 줄에 불과한 것인데 말입니다. 아마 열심히 고군분투하던 주인공들의 몸짓을 보고 난 뒤에 제시된 자막이라, 일종의 영화가 부린 마술("이 글자만 보고 감동을 받아라!")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쓰다 보니 멀리 돌아왔지만, 아무튼 소수의 멤버로 지금의 한국 영화라는 성과를 낸 것은 분명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더 분명한 건, 이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다는 것이겠죠. 언젠가 제가 여기에 적은 "저는 세 명 외엔 잘 떠오르지 않는데요."라는 문장도 나중에 봤을 때 감동이 느껴지는 순간이 올까요? 단 한 번의 기적적인 승리보다는, 꾸준한 성적을 낼 수 있는 든든한 스쿼드를 마련한 한국 영화 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리바운드>라는 선수를 추천합니다. <리바운드>는 우리 팀의 에이스 격인 영화는 아닐 수 있겠지만, 든든한 영화라고는 생각합니다. 이런 든든한 영화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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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 기고한 <범죄도시3> 비평 글이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링크 첨부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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