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미안하다고 말하면 칼로 찔러버릴 거야.” 갱스터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아닙니다. 거구의 글쓰기 강사가 주인공인 감동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더 웨일>입니다. 3월 1일에 개봉한 영화이구요, <더 레슬러>, <블랙 스완> 등으로 유명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제목들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보니, 이 감독은 정말 ‘괴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레슬러>도 <블랙 스완>도, 인생의 위기에 처한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이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더 평범하지 않은 짓을 벌이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더 웨일> 역시 앞서 말했듯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몸무게가 272kg인 남자 찰리입니다. 서두에 적었던 대사는 찰리의 절친이자 간병인인 리즈가 찰리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리즈가 스스로를 건강을 관리하지 않는 찰리를 나무라자, 찰리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때 저 대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 대화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말을 들은 괴인 찰리는, 예상보다 더 평범하지 않은 대답을 합니다. “그래 한 번 찔러봐. 어차피 내 내장에 닿으려면 최소 60cm는 돼야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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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일>은 그런 찰리의 월요일부터 금요일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또한 물론 예사롭지 않은 일상입니다. 일단 몸을 수월히 움직이기 힘든 찰리로 인해, 영화는 찰리의 집 안에서만 진행됩니다. 그곳에서 찰리는 가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일을 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온라인으로 학생들에게 에세이 쓰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영화엔 찰리가 강의를 하는 모습이 가끔 등장하곤 하는데요. 그 에세이 강의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제발 솔직해져라.’ 글쓰기의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이나 대학은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꾸밈없이 표현해 내는 것이니, 부디 솔직해지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솔직함을 말하고 있는 그가 정작 자신의 웹카메라를 켜지 않은 채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괴인 같은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들이 괴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솔직하게 말할까’ 두려웠던 겁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팩트로 폭행할까봐’, 혹은 나의 ‘뼈를 때릴까봐’ 자신을 숨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찰리의 몸을 둘러싼 살은 상징적입니다. 일각에서 이 영화를 비만 혐오를 조장한다는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하지만 저는 그 지적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이 살은 지나친 식욕을 억제하지 못한 대가, 혹은 자기 관리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찰리의 살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구로 보였습니다. 무엇을 보호하는 것이냐구요? 그건 바로 위에서 말한 찰리의 뼈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뼈를 때릴 것이, 즉 너무나 솔직한 말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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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에겐 사실 원죄가 있습니다. 찰리가 뼈를 맞지 않기 위해 살을 찌운 것이라면, 그럼 우선 찰리가 왜 뼈를 맞고 아픈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건 바로 찰리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남은 인생을 보내기 위해, 아내와 어린 딸을 버리고 떠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남겨진 가족뿐만 아니라 찰리와 새로운 연인이 속해 있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까지 큰 충격을 주었고, 사람들은 둘을 비난하였습니다. 찰리는 그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을 택한 것이었죠. 하지만 사람들의 맹렬한 비난이 도를 지나침에 따라, 새 연인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찰리는 폭식을 시작한 것이구요. 그러니까 찰리의 살은 자신을 힘들게 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버티기 위해, 살기 위해 세운 벽인 셈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너무 솔직한 죄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벌을 받게 된 찰리는, 더 이상 자신의 뼈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살을 찌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체중이 불어난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은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
찰리 얘기를 하기에 앞서, 사실 저는 이번 주 원데이원무비를 못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에 잠깐 처했습니다. 심장 쪽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이틀간 느껴졌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심장 문제는 아니었던 걸로 결론은 났지만, 어쨌든 응급실에 갔다 왔을 정도로 제 나름으로는 심각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괜찮지만, 당시에는 조금 부끄럽게도 죽음까지 생각했었답니다.. 그래서 내가 진짜 죽는 거면, 누구에게 무엇을 남기지? 그런데 물질적으론 딱히 남길 게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렇다면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버린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무슨 말을 할지는 최종 결정하지는 못했는데, 찰리의 말처럼 “여러분 제발 솔직해지세요!”라고 마지막 포스팅을 올리거나, 아니면 고맙거나 미안한 사람한테 솔직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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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찰리로 돌아와서, 찰리는 다행히 강의료를 통해 돈을 많이 모아둔 상태였습니다. 사실 그것보다 더 다행인 것은, 찰리의 무언가를 물려줄 ‘누군가’가 찰리에게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찰리가 오래 전 버리고 떠난 딸 엘리입니다. 찰리는 엘리를 집으로 부르고, 서투른 사과를 시작합니다. 5일은 길었던 고통의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찰리의 솔직한 마음이 자신의 두터운 살을 뚫고 나오자, 엘리는 마침내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중 엘리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은 찰리의 칭찬입니다. 찰리는 엘리가 어릴 적에 과제로 적은 에세이를 두고, ‘자신이 지금까지 읽은 에세이 중 최고’라고 치켜세웁니다. 이를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을 약간 변형해서 표현해 보자면, ‘고래의 칭찬이 엘리를 춤추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찰리는 엘리와 라스트 댄스를 추기 위해 거대한 몸을 일으키고, 영화는 그런 찰리의 노력에 감동해 찰리에게 날개를 달아줍니다.
영화가 엔딩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물론 비유입니다. 찰리는 고래가 아니고, 춤을 출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소 비현실적인 이 엔딩에 진짜가 있다면, 그건 찰리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찰리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아니 죽을 만큼 먹고 또 먹어서야 끝내 솔직함을 토해냅니다. <더 웨일>은 ‘제발 솔직하세요!’라는 말을 고래 같은 몸으로 표현한 한 편의 행위 예술 같은 영화입니다. 솔직한 사람이 되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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