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너무 유명해서 많은 분들이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만 말하자면 11세 소년 빌리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완강했던 아버지가 마침내 빌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이 큰 감동을 주는 영화였죠. 그중 제가 꼽는 가장 명장면은 바로 이 장면입니다. 빌리는 아빠와 함께 마침내 발레 학교로 향하게 되는데요. 너무 신난 빌리는 그 기분을 주체할 수 없어 춤을 추며 걷기 시작합니다. 도저히 평범하게 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춤이 좋아 미칠 지경인데, 그렇게 단호하던 아빠가 이제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본 아빠가 빌리에게 말합니다. “꼭 그래야겠니? 평범하게 좀 걷지 않을래?”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이 평범하지 않은 걸음을 현실에서도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입시 경쟁 제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부모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런 발걸음을 자주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혹은 미래에 제 아이가 생긴다면, 다른 무엇보다 이 춤 사위 같은 발걸음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걸음이 결실을 맺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이 춤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RRR>의 신나게 걷는 듯한 춤을 보며,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그 춤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멀리서 이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분명, “저기 이상하게 걷고 있는 사람 좀 봐!”라는 말을 할 것 같은 춤. 그리고 저는 이 춤 같은 발걸음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며 여러 번 목격하였습니다. 절대 ‘나의 시간’이 올 거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키 호이 콴 배우가 남우조연상을 받으러 나갈 때.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 배우가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러 무대로 나갈 때. 그리고 등등등..
그래서 제가 했던 말을 번복하려고 합니다. 제가 틀렸다는 사실을 고백하기 위해 너무 말을 길게 끈 것 같네요. 딱 말하겠습니다. 지난주 아카데미를 포함한 세상 모든 상 따위에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않다고 말했던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누군가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이 태어나서 가장 평범하게 걷지 못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자리를 빌려 <RRR>을 만든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오스카 수상자들에게, 축하하다는 말과 그동안 평범하게 걷지 않느라 고생이 많으셨다는 말을 전합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