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또한 고등학교 때 싫어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그 아이를 꾸준히(?) 싫어했었죠. 가끔 친구들과 만나 옛날이야기를 하면 저는 항상 그 친구의 흉을 봤었고, 그러면 친구들이 늘 그 이유를 물었었습니다. “대체 걔가 왜 싫은데?” 저는 그 아이가 얼마나 나쁜 아이인지 이런저런 작은 에피소드들을 읊어댔었지만, 가끔은 말하면서 스스로도 이걸로는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었습니다. 아니 고작 이런 걸로 내가 걔를 씹었었다고? 이상하다. 내가 걔를 싫어하는 마음은 진짠데. 왜 그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까.. 와 같은 질문을 이어갔었지만, 지금까지도 끝내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럴 땐 차라리 데이빗 로워리 감독을 고용한 다음 나의 과거를 리메이크 해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제가 피터팬처럼 영원히 늙지 않는 것 정도로 실현 불가능한 일이겠죠.
리메이크된 <피터팬&웬디>를 보고, 웬디라는 캐릭터에 조금 더 집중한 이 리메이크가 잘됐다&별로다를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이 증오에 사로잡힌 후크 선장의 사연을 헤아려보기 위해 노력했을 감독의 마음이 신경 쓰였습니다. 왜냐면 제 사전에 영화란, 한번 만들어지면 그게 끝인 거거든요. 이렇게 그냥 짜잔! 리메이크입니다! 하고 덮어쓰기 해버려도 되는 건가 싶거든요. 많이 양보해서 된다고 쳐봅시다. 그럼 피터와 웬디의 관계만 잘 정비해도 됐었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감독은 왜 굳이 빌런의 이야기까지를, 후크 선장이 왜 피터의 빌런이 되었는지 까지를 리메이크 했던 것일까요. 왜 괜히 그 이야기를 건드려서, 과거 저의 기억나지 않는 증오까지를 들춰보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엔, 저는 아직 어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리메이크를 보자, 그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나의 매력적인 빌런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이제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네가 나에게 준 증오와 시련 덕분에 나도 이만큼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고. 로워리 감독이 이런 의도로 후크 선장의 과거를 리메이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저는 저의 과거를 리메이크 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도 영화처럼 한 번 지나면 그게 끝인 게 맞는 것이겠지만요, 저도 <피터팬&웬디>의 세 주인공들처럼 오늘부터 새로운 버전의 철홍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