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 물의 길>이 개봉했습니다. <아바타> 1편 이후 무려 13년 만입니다. 개봉 당시 정말 환상적으로 구현된 3D 그래픽 효과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정말로 어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로부터 13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세상에 없던 길들이 셀 수 없이 생겨났지만, 저는 그중에서 가장 변화가 없었던 분야가 3D 영화 분야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바타>는 영화의 새 시대를 선포하는 듯한 영화였지만, 2022년 지금까지 <아바타> 이후로 성공한 3D 영화는 <아바타>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많은 영화들이 3D의 물결에 탑승해보려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두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바타>가 다른 영화들이 귀엽게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무언가를 선보였기 때문인 것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3D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일까요. <아바타 : 물의 길>은 그 답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아바타>를 월등히 뛰어넘었다고도 할 수 없고, 이 영화가 3D 영화의 한계를 부숴버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바타 : 물의 길>이 2009년 작 <아바타> 이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단 하나의 3D 영화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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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의 끝, 모든 것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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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한 시절을 끝내자.
[NO.41]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끝내야 하는 것
(2)
2022년 12월 17일
(본 글은 40호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이 영화는 왜 1980년에 시작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임스 그레이가 끝내고 싶은 한 시절이 1980년에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전적 이야기를 하기 위해 1980년대를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니라, 끝내고 싶은 한 시절을 표현하기 위해 1980년대가 영화의 배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자신의 유년기와 겹쳤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아마겟돈 타임>을 다시 보게 되면, 정말 많은 장면들이 달리 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모든 영화들까지 말입니다.
그중 가장 먼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제목의 ‘아마겟돈 타임’은 극 중에 등장하는 노래의 제목입니다. 정확히는 밴드 ‘더 클래시’가 1980년에 발매한 앨범 <<Black Market Clash>>의 수록곡 제목입니다. 이 영화를 단순한 자전적인 영화로 본다면, 이 제목은 그저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는 영화의 주인공 폴의 입장에서 보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하나의 특별한 노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치 ‘아바타’라는 단어를 보면 2009년이 떠오르는 것처럼. 혹은 MBC 예능 프로그램 뜨거운 형제들의 아바타 소개팅을 재밌게 봤던 2010년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 자전 영화가 아닌, ‘한 시절을 끝내자’라는 메시지를 가진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제목이 다르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제목 자체에 ‘시절’이라는 표현, ‘타임’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영화의 제목 ‘아마겟돈 타임’이 바로 제임스 그레이가 끝내고 싶은 ‘타임’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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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타임은 과연 어떤 타임일까요. 이 영화는 그렇지 않은 척, 그냥 자전적인 가족 영화인 척하고 있지만 실은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입니다. <아마겟돈 타임>을 보시면 익숙한 두 명의 유명한 미국 사람의 이름이 귀에 들리실 것입니다. 세대에 따라 가장 먼저 기억나는 이름이 다를 것 같은데요. 저는 트럼프였습니다. 영화엔 트럼프 가족이 등장합니다. 그중 도널드 트럼프의 아빠인 프레드 트럼프가 폴이 입학한 사립 학교의 이사장으로 영화에 나타납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실제로 다녔던 이 학교의 졸업생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익숙한 또 한 명의 이름은 미국의 40대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레이건은 1981년 1월에 당선됩니다. (저는 미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깊이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주워들은 정보를 토대로 레이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레이건은 현대 미국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당선으로 인해 미국은 압도적인 넘버원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희생된 고귀한 가치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포용이라는 가치입니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입니다. 정말 간략하게 말하자면, 전 세계에서 모인 이민자들을 모두 포용함으로써 united된 성취를 이룬 나라가 ‘United States of America’인 것입니다. 하지만 레이건 시대 이후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미국인’, 흔히 말하는 ‘백인 남성 기독교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배척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민자들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없게 되었고, 위대한 미국이라는 목표에 방해가 되는 가치들은 모두 뒷전이 되었습니다.
이민자들 못지않게 이 시기에 엄청난 직/간접적인 탄압을 받게 된 사람들이 바로 유색인들과 성소수자들입니다. 영화엔 레이건의 실제 연설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연설은 이런 식이었다고 합니다. “동성애가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정말 이런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레이건이 지구의 멸망을 얘기하며 활용했던 표현이 ‘아마겟돈 타임’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아마겟돈 타임>에 두 대통령의 이름을 소환했습니다. 레이건과 트럼프. 결론적으로 <아마겟돈 타임>은 트럼프 시대의 기원을 1980년대 레이건 시대라고 생각한 제임스 그레이가, 다시 또 시작될 수도 있는 ‘트럼프 타임’을 이제 그만 끝내자, 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유년기로 돌아간 영화인 것입니다. 유년기로 돌아가 그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나 돌이켜보는 회고록 같은 영화입니다. 그럼으로써 영화를 보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면 이 사태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묻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서 그 시대를 끝낼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아마겟돈 타임을 만들 것인가. 폴과 달리 우리에겐 아직 선택의 기회가, 이 상황을 다시 바라볼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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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보이는 것은 이 영화의 엔딩입니다. 엔딩에서 폴은 트럼프의 연설을 듣고 있습니다. 물론 그 트럼프는 도널드 트럼프가 아닌, 폴이 다니는 사립학교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트럼프의 아빠, 프레드 트럼프입니다. 트럼프는 여기서도 전통의 가치와 미국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때 그걸 듣고 있던 폴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그 길로 학교를 떠납니다. 영화는 길을 떠나는 폴의 뒷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영화의 엔딩을 그저 전기적인 영화로 접근하게 되면 영화가 이상해집니다. 폴의 마지막 발걸음을 해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출로 보기에도, 제임스 그레이의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이 영화의 엔딩이 앞서 거듭 강조했던 주장의 강력한 표현 방식처럼 느껴졌습니다. ‘정통 미국’을 강조하는 연설을 듣는 것을, 그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폴. 새로 시작하기 위해, 무언가를 끝내는 사람.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한 시절을 끝내는 사람. 그러니까 폴이 나가는 곳은 단순한 학교가 아닙니다. 폴이 나가는 곳은 아마겟돈 타임이라는 한 시절입니다.
폴의 이 당당한 뒷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은 것을 보니, 저 역시 끝내고 싶은 한 시절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그것을 이 영화처럼 노래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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