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11월 23일에 개봉한 영화 <아마겟돈 타임>에 관한 토크를 진행하고 온 것입니다. 이 토크 행사의 이름은 ‘전주 아트톡’인데요. 이 아트톡에 대한 TMI를 하나 알려드리며 오늘의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건 바로 12월 7일에 진행된 <아마겟돈 타임> 아트톡이, 이곳에서 열린 마지막 아트톡이었다는 사실입니다.
[NO.40]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끝내야 하는 것
(1)
2022년 12월 10일
이건 말 그대로 TMI입니다.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알면 재밌을 수도 있고, 알아도 재미없을 수 있는 정보. ‘마지막 아트톡’이라는 정보가 TMI일 수 있는 이유는, 아트톡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건 우리에게도 그렇고, 영화관(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특히 영화관 입장에선, 이 행사를 대체할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행사를 새로 기획할 계획이 있을 테니까요.
저 역시도 이에 관한 특별한 감흥이 없었습니다. 영화관 관계자분으로부터 이번이 마지막 아트톡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거짓 리액션을 했었던 저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입으로는 “정말요? 진짜 아쉽네요..”라고 하고 있었지만, 속으론 전주에서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TMI2 : 저는 전주에 갈 때마다 꼭 남부시장에 있는 조점례남문피순대에서 암뽕순대국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토크 준비를 위해 <아마겟돈 타임>을 다시 보는 과정에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겟돈 타임>은 무언가의 마지막과 잘 어울리는 영화다.’ 그 생각은 <아마겟돈 타임>의 포스터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고 난 뒤 더 짙어지게 되었는데요. 거기엔 적혀 있는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한 시절의 끝, 모든 것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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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포스터에 적혀 있는 문장 따위에 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애초에 포스터를 잘 들여다보지도 않는 편입니다. 그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대부분 영화를 팔려는 사람들의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창작된 문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의 매력을 완벽히 표현해낸 문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 영화 자체는 무관한 게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지금의 이 시기가, 그러니까 2022년의 마지막 달이라는 시기, 그리고 어쩌면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었던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라는 한 시절이 어쩌면 끝날 수도 있는 이 특별한 시기가, 평소 눈여겨보지 않던 포스터의 한 글귀를 특별하게 보도록 만든 것입니다. 한 시절의 끝, 모든 것의 시작. 저는 어쩌면 이 문장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감독에 관한 TMI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TMI라고 했지만 이번엔 어쩌면 정말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8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1994년, 24살의 나이에 데뷔작 <리틀 오데사>(한글 수입 제목은 <비열한 거리>입니다)를 연출한 다음, 28년 동안 영화를 8편 만든 것이니까, 나름 영화 작업을 꾸준히 하는 편에 속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발표하는 영화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냈던 감독이라는 점에서, 더 대단한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늘 주요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았던 감독이기도 합니다.
추가 TMI : <더 야드>, <위 오운 더 나잇>, <투 러버스>, <이민자>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애드 아스트라>와 <리틀 오데사>는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 <잃어버린 도시 Z>는 베를린 영화제의 비-메인 경쟁부문에 올랐습니다. 이번 신작 <아마겟돈 타임> 역시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는데, 이 영화제에서 바로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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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사실 이런 화려한 경력에 비해 어떤 흥행적인 성공을 거둔 적은 없는 감독입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비평적으로도 영화에 걸맞은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리는 편이고, 결정적으론 영화제에 그렇게 많이 초청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데뷔작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던 것을 제외하곤 안타깝게도 다른 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관련해서 올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황금종려상 대신 아쉽게(?) 감독상을 수상한 결과를 두고,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요. 뭐 이번에 진짜 받았어야 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못 받으면 앞으로 평생 못 받는 거 아니냐.. 우리 박 감독 불쌍(?)해서 어떡하냐까지.
그런데 이 얘기를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첫 영화를 제외하곤 경쟁 부문에서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황금종려상 대신 감독상을 받았다고 너무나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 좋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전부 저의 망상이기는 합니다.
망상 한번 해본 김에, 하나만 더 해보겠습니다. <아마겟돈 타임>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영화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인데요. 여기서 두 번째 망상. 저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이번엔 진짜로 상을 한 번 받아보기 위해, 제대로 마음을 먹고 감독들의 필살기인 자전적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게 허무맹랑한 생각은 아닌 게, 많은 세계적인 감독들이 자전적 영화를 만듦으로써 어떤 도약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선, 이런 생각을 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이 영화는 감독이 갑자기 자전적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라,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특별한 메시지가 바로 한 시절의 끝,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표현을 주장의 형식으로 살짝 바꿔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임스 그레이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한 시절의 끝, 모든 것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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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한 시절을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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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타임>은 1980년에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1980년일까요. 만약 이 영화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상을 타기 위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꺼낸 순서로 만들어진 영화라면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임스 그레이가 1980년 대에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유년 시절을 1980년 대에 보냈던 사람은, 그 시절을 영화로 만들면 그 영화는 당연히 1980년에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한 시절을 끝내자. 라는 메시지를 가진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적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위 메시지를 가진 영화라고 가정한 다음, 다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왜 1980년에 시작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임스 그레이가 끝내고 싶은 한 시절이 1980년에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전적 이야기를 하기 위해 1980년대를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니라, 끝내고 싶은 한 시절을 표현하기 위해 1980년대가 영화의 배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자신의 유년기와 겹쳤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아마겟돈 타임>을 다시 보게 되면, 정말 많은 장면들이 달리 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모든 영화들까지 말입니다.
개봉한지 좀 된 영화라 이제 극장에 많이 걸려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 중 단 몇 분만이라도 영화를 보고 글의 뒷내용을 읽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의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주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12월 10일, 2022년이라는 한 시절의 끝의 시작에서,
다음 주에 계속.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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