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쩔 수 없잖아요. 울지 마요.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니까”
<사라진 시간>의 주인공 형구(조진웅)가 영화 후반부 초희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 영화는 형구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영화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우실 수 있겠지만 일단 한 번만 받아들여 주시길 바랍니다. 멀티버스보다는 조금 더 쉬우니까요.
형구는 형사입니다. 형구는 어느 날 화재로 인해 세상을 떠난 교사 부부의 사건을 조사하러 한 작은 마을에 가게 됩니다. 조사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권하는 술을 마시게 되고, 술에 취해 그 화재가 일어난 집에서 잠에 들게 됩니다. 그리고 눈을 뜨니 형사 형구는 교사 형구가 되어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아무런 특별한 장치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걸 글로 적어도 이렇게 말이 안 되는데, 당연히 당사자인 형구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합니다. 경찰서에 찾아가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한번 술을 잔뜩 먹은 뒤 잠을 자보기도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부정만 하다가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그리고 초희를 만납니다. 형구는 이제 슬슬 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자신을 도와달라며 현실을 부정하던 형구는, 이제 그 누구를 만나도 자신이 형사였다, 아니 형사’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초희를 만납니다.
초희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누구한테 자신의 이야기를 잘 털어놓지 않았던 초희는 이날 형구와의 하루가 마음에 들었는지, 형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전 아픔이 있어요. 남들이 모르는. 밤이 깊어지면 전 다른 사람이 돼요.”
초희가 자신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 일명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자 형구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 그거 알아요. 그거 아프죠. 그게 많이 아파요.”
그렇게 이어서 위에 적었던 ‘어쩔 수 없으니 울지 말라’는 대사가 나오며 영화는 곧 마무리됩니다. 결국 <사라진 시간>이라는 영화 역시, 사람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현실에서 꼭 정신 질환이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영화일 뿐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영화는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말도 안 되는 어떤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 성의가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나 <사라진 시간> 두 영화 모두, 누군가에겐 장난 같은 영화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되는 멀티버스가 나오거나, 갑자기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영화라니. 심지어 영화 속 문제도 딱히 명쾌하게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끝을 맺습니다. 대체 이런 영화를 왜 만드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만 그 부자연스러움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본다면, 멀티버스만큼 무궁무진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영화만큼은 그 최소한의 성의를 갖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 제 성의를 봐서라도…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