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한국에 꼭 개봉해서, 감도쿠사마가 한고쿠에 다시 오셨으면 좋겠스무니다.”
[NO.32]
영화제 와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2)
2022년 10월 15일
라는 말로 벅찬 저의 마음을 표현하자, 감독님은 이상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갑자기 먼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영화 관계자들과 대화를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잠깐 혼란에 빠졌습니다. 혹시 뭔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내가 일본 문화 입장에서 ‘공적인 자리에서는’ 해선 안 될 말을 한 것은 아닌지 잠깐 걱정을 했었는데요.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고, 알고 보니 관계자들에게 <유코의 평형추>에 관한 시크릿 정보를 오픈해도 되는 것인지 물어본 것이었더라구요.
그 비밀 정보는 이것이었습니다. 바로 <유코의 평형추>가 내년 1월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을 할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완전 비밀까지는 아니고, 아직 홍보를 시작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하네요. 어쨌든 어딘가에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린 것은 그 자리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역시 마음을 표현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저의 진심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마지막 그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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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된 감독은 인도 감독 난디타 다스였습니다. 이 감독은 배우로서 이미 마흔 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인데, 이번엔 세 번째 연출한 영화 <배달의 기사>로 부산 영화제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감독의 이름을 들은 것이 처음이라, 사실 이 인터뷰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냥 또 하나의 인터뷰일 뿐,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특히 인도 사람과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시절 고기 공장에서 많은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먼 나라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역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이 감독의 어마어마한 이력을 알게 된 다음,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경력은 바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이었습니다. 다른 그 어떤 영화제도 아닌, 칸 말입니다. 여기서 여러분께 고백할 게 하나 있는데요. 솔직히 저는 이 감독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가져서는 안 될 몹쓸 편견 하나를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이 감독이 ‘부산 영화제’에 초청받은 것이, 감독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일 것이라는,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적당히 마련한 어떤 질문에도 감독이 열심히 대답해 줄 것이라는 망상을 가진 채 인터뷰를 준비했다가, 엄청난 이력을 보고 자세를 고쳐 잡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이 인터뷰에는 감독뿐만이 아닌 영화의 주연을 맡은 카필 샤르마 배우가 함께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조사해 보니 카필 역시 감독 못지않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배우는 인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The 카필 샤르마 Show)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말하자면 '국민 코미디언'이었는데요. 올해 초엔 넷플릭스 제작으로 만들어진 코미디 쇼가 공개되기도 하였습니다. 제목은 <카필 샤르마 : 나 아직 안 끝났어(I’m not done yet)>로,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잠깐 그 코미디 프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요. 왜 이 쇼의 제목이 “I’m not done yet.”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영상 초반에 카필의 입을 통해 설명됩니다. 이미 인도에서 이룰 건 다 이룬 카필이 넷플릭스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돌자, 주변 사람들이 그 이유에 대해 카필에게 자주 물어봤던 모양입니다. 그때 카필이 했던 대답이 “나 아직 안 끝났어”, “나 아직 더 할 수 있는데?”였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카필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거울을 보며 ‘암 낫 던 옛’을 몇 번이고 입 밖으로 되뇌었다고 하는데요.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돌연 베개를 던지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1년 반 동안 애 둘 낳았으면 됐잖아. 뭘 얼마나 더 하려고?” 자칫 낯간지러울 수도 있는 진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며, 역시 괜히 유명 코미디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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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거둔 두 스타를 동시에 상대하는 인터뷰가 처음엔 상당히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수 천 수 만 번의 질문을 받아봤을 두 사람에게 식상하고 뻔한 질문, 무엇보다 재미없는 질문(예: 난디타 다스에게.. 영화란?)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영화란?’ 같은 질문도 신선했겠지만, 이미 너무 많은 질문을 받은 두 사람에겐 어떤 질문도 다 예전에 이미 받아봤던 질문일 확률이 높을 테니까요.
이런저런 걱정을 가진 채 드디어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결과적으로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평론가답게 날카롭고,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진 것 같지는 않지만,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됐었거든요. 물론 두 분의 의견을 물어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끝나고 난디타 다스 감독이 저에게 ‘글 링크를 보내달라’고 한 것을 보면, 심지어 제가 ‘이게 영어로 발행되지는 않을 거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한 것을 보면, 우리의 대화가 꽤 재밌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라고 혼자 긍정 회로를 돌려보았습니다^^.
가장 재밌었던 순간은 제가 두 분에게 서로를 칭찬하는 ‘칭찬 타임’을 갖게 만들었던 때입니다. 당연히 아무 맥락 없이 억지로 칭찬 좀 해달라고 강요를 했던 것은 아니구요. 카필 배우가 자신이 어린 시절 신문 배달을 할 정도로 힘들게 살았던 경험을 통해 배역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말을 했을 때, 난디타 감독에게 이 과거를 알았냐고 물으며 평소 이 배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냐는 말을 덧붙였던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감독님의 답변이 정말 재밌었는데요. 자신은 평소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카필의 쇼를 초반 잠깐만 보다 꺼버렸다는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함께 큰 웃음을 터뜨렸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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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웃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퍼포먼스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는 감독의 ‘배우 칭찬’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베테랑 스타의 유머와 칭찬이 잘 어우러진 품격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저는 이 훈훈한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배우에게 바로 이어서 그동안 난디타 다스 감독의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Your turn’이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카필 배우는 잠깐 부끄러워하더니, 역시 대스타답게 유려한 말로 감독에 대한 칭찬을 시작했는데요. ‘평소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읽지도 않고 OK’라는 말로 초특급 칭찬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때 그 말을 미소를 머금은 채 듣고 있던, 산전수전 다 겪은 배우이자 감독인 난디타 다스 감독의 표정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지 않았나, 나는 그 장면이 가장 좋았다’는 말을 했을 때 감독님이 지었던 표정을, 또 ‘<배달의 기사>의 엔딩이 담고 있는 작은 희망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때 배우님의 표정이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는 말을 했을 때 두 분이 짓고 있던 표정을 저는 보았습니다. 이 짧은 인터뷰를 마친 다음 숙소로 돌아가 작성할 기사엔, 내가 방금 목격한 이 표정 하나만을 완벽히 표현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 표정. 그렇지만 어떤 단어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표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일하는 것도, 놀러 온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영화제에 온 저에게 특히 뜻깊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었는데요. 마치, 일하러 온 거 아니면 어때, 그렇다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면 뭐 어때, 너가 어떤 상황인 게 뭐가 중요해, 그냥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이렇게 눈 마주치고 대화하고 웃고 즐기면 되는 거지! 라고 위로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웃으며 즐겼던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의 마지막 날. 저는 화산학자 커플 카티아와 모리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랑의 불꽃>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1991년 6월 3일, 일본 운젠 화산을 관측하다 화산이 폭발함에 따라 목숨을 잃게 됩니다.
다음 주에 계속.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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