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7명의 영화 평론가와 깐쇼새우를 먹었습니다. 실은 탕수육도 있었고 누룽지탕도 있었고 칭따오 맥주도 있었지만, 깐쇼새우가 제일 맛있었습니다.
씨네21에서 마련해 주신 식사 자리였습니다. 씨네21을 통해 영화 평론을 쓰게 된 필자들이 서로 얼굴을 트고 교류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리를 만들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이 많아서 초반엔 좀 어색했지만, 결국 3시간이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나서 자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달래준 깐쇼새우의 공이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NO.26]
영화 평론가들이랑 깐쇼새우 먹은 썰
<사랑에 빠진 것처럼>
2022년 8월 27일
저희는 영화 평론가답게 한국 영화의 미래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 대작 네 편 중 뭐가 제일 좋았어요? 올해 독립 영화 중 재밌게 보신 거 있으세요? 같은 가벼운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요. 사람이 많아서 본격적으로 뭔가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것도 있지만, 막상 거기서 선뜻 깊은 질문을 던지기가 망설여지던 것도 있었습니다. 머릿속으론 온갖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용기를 내지 못한 본질적인 이유는, 열심히 글을 쓰시는 다른 영화 평론가들에 비하면 저의 요즘의 모습이 그다지 영화 평론가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컸습니다. 만약 세상에 ‘진짜 영화 평론가’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게 저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영화를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이를 알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쓰는 이 글 또한 영화 평론가로서 쓰는 본격 영화 비평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글이기도 하고, 이름만 ‘원데이 원무비’이지, 하루에 영화 한 편을 보지 않는 날도 종종 있기도 하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섣불리 영화 평론가인 것처럼 진짜 영화에 대한 얘기를 했다가, 정체가 탄로나 돌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중식당이니 돌이 날라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대신 먹다 남은 새우 꼬리나 단무지 같은 것들이 날라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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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쉬움을 머금은 채 집에 돌아와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이라는 영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뭘 볼까 두리번거리던 찰나에 이 영화가 마치 나를 봐달라는 듯이 첫 화면에 떴고, 그래서 의도치는 않았지만 다소 운명적으로 재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름만 외워도 늠름한 영화 평론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는 이름을 가진 이 감독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영화들을 만든 감독입니다. (안타깝게 2016년에 세상을 떠나셔서, 이제는 신작을 만날 수 없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향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클로즈업> 등. 모두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영화와도 비교될 수없이 독특하면서, 동시에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그중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이란 출신인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일본에서 일본 배우들을 캐스팅해 일본어로 만든 영화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배우 카세 료가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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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다소 독특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일단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아키코는 돈을 받고 데이트 상대가 되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 여성입니다. 대학생이고 남자친구도 있습니다. 그 남자친구 노리아키를 카세 료가 연기하는데, 노리아키는 현재 머릿속에 아키코에 대한 모종의 의심이 가득 찬 상태입니다. 그런 노리아키와 아키코의 전화 통화가 영화 초반부에 길게 이어집니다. 한 바에서 알선자로부터 일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아키코는 남자친구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친구와 카페에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데요. 이때 그게 정말이지 확인하기 위한 노리아키의 방법이 꽤 기발합니다. 바로 아키코에게 화장실에 있는 타일의 개수를 세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키코가 말한 숫자를 기억해둔 뒤, 다음에 본인이 직접 ‘행차'해서 이를 비교/확인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노리아키라는 인물의 집요한 성격을 단번에 보여주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키코는 이미 들통이 났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한 가정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80대 나이의 노교수 타카시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영화에 나이가 정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이 노인을 연기한 배우의 실제 나이가 28년 생이고, 영화가 2012년 작인 것을 감안하면, 얼추 비슷한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타카시는 와인과 음식 등 나름의 코스(?)를 준비했지만, 아키코가 급 피곤을 느껴 잠이 드는 바람에 아무런 해프닝 없이 밤이 흐르게 됩니다.
사건은 다음 날 아침에 벌어집니다. 타카시는 자신의 차로 아키코를 학교에 데려다주는데요. 아키코가 차에서 내려 교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바로 그곳에 남자친구 노리아키가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아키코를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다. 더 재밌는 건 다음 상황입니다. 아키코는 어젯밤에 뭐 했냐며, 왜 연락이 되지 않았냐며 난폭하게 다그치는 노리아키에게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은 채 교실에 들어가 버리는데요. 노리아키 입장에선 정말 답답할 수밖에 없겠죠. 그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노리아키의 선택은 바로 방금 전 아키코를 내려줬던 타카시의 차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침내 노리아키가 타카시가 만나게 되고, 노리아키가 타카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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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타카시의 이 질문을 기점으로 알쏭달쏭한 새로운 챕터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상태를 영화의 제목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바로 ‘것처럼’의 상태입니다. 이어지는 타카시의 대답이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럼 나도 묻지. 자넨 누군가?” 타카시는 지금 자신이 마치 아키코의 할아버지인 것처럼 노리아키에게 역으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것처럼’의 상태가 지속됩니다. 타카시는 할아버지인 ‘것처럼’ 행동하고, 노리아키는 할아버지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아키코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가 그동안 보여준 불신과 집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들은 사랑과 정 반대에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둘의 우스꽝스러운 ‘것처럼’을 흥미롭게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불안한 ‘것처럼’의 상태가 언제, 무슨 사건을 계기로 탄로날 지를 예상하게 됩니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그래서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거라고 예상하시는가요? 당연히, 영화의 마지막엔 결국 모든 진실이 밝혀집니다. 왜 스포일 하냐고 화내시면 죄송하긴 하지만, 다시 한번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 영화에서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그 과정과 결말을 맞은 인물의 반응이기 때문에 그냥 적어버렸습니다. 이건 영화 평론가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스포일러를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 죄송합니다. 한 번 영화 평론가인 것처럼 적어 봤습니다. 던지시는 돌, 겸허히 맞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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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글 초반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또 다시 ‘돌을 던진다, 돌을 맞는다’는 표현을 적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바로 화가 난 노리아키가 타카시의 집을 향해 돌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노리아키가 직접 돌을 던지는 모습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렇게 추정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뿐입니다. 저는 바로 이 마지막 장면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집에 돌이 날라와 창문이 깨지는 그 소리와 충격 자체가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이 모든 상황을 상징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저 또한 이 돌을 맞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를 공포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그건 제가 영화 평론가인 것처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 평론가들과 깐쇼새우를 먹고 돌아온 날 밤 정말 특별한 이유 없이 보게 된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돌을 맞게 된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영화는 돌이 타카시의 집 창문을 뚫고 들어오자마자 그 자리에서 끝이 납니다. 정말 말 그대로 쨍그랑 소리와 함께 곧이어 그 깨진 창을 배경으로 영화의 크레딧이 오릅니다. 타카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타카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라고 적고 보니 또 영화 평론가인 것처럼 글을 적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카시가 어떻게 되든 말든, 그건 진짜 김철홍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 말입니다.
타카시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선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뭐 진짜 영화 평론가분들이 탁월한 설명을 들려주시겠죠. 대신, 같이 돌을 맞은 저의 다음 행동은 이러합니다. 저는 이 영화와 식사 자리 에피소드를 글로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께서 읽고 계시는 글이 바로 그 글입니다. 지금까지 영화 평론가 김철홍이었습니다. 쨍그랑. 그리고 엔딩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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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것처럼’들로 가득한 이 영화에 진짜가 담겨 있는 장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장면은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영화엔 제가 언급하지 않은 아키코의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아키코는 영화가 진행된 오늘만큼은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시골에서 아키코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기 때문인데요. 문제는 할머니에게 핸드폰이 없어서, 실시간으로 연락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할머니는 아키코의 핸드폰에 음성 메시지를 남겨 자신의 도착 시간과 만날 장소를 알립니다. 영화엔 그런 할머니가 남긴 네 통의 메시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흘러나오는데, 현재에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시차의 간격이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진심과 맞물려 진한 감동을 자아냅니다. 과연 아키코는 그 시차를 이겨내며 극적으로 할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될까요. 그 여부에 대해서 스포일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영화의 결말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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