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아뿔싸’라는 말을 적고 나니 이 표현이 별로 맛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신 쓸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네요. 혹시 좀 더 세련된 표현을 알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제보바랍니다. 그런데 아무튼 그때는 아뿔싸였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지금 당장 병원 오라는 것일 수도 있구나. 마동석 5:5 애드립 보면서 낄낄거릴 때가 아니었구나. 내 생과 사가 5:5였구나,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는데 그냥 괜찮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뭔가 글에 극적인 장치를 넣어보려 했는데 조금 귀찮아서 그냥 씁니다. 그때 나눈 통화에서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아무 것도 없다고, 그래서 심지어 목요일에 병원을 올 필요도 없다고, 그래서 전화를 한 거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통화를 메가박스 코엑스점 앞에서 한 것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바로 쇼핑을 해버렸던 기억이 있는데요. 정신을 차린 다음 결제 내역을 보고 다시 아뿔싸를 외쳤던 것은 비밀입니다.
이렇게 허무한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를 왜 글로 썼냐구요? 그건 제가 아니라 아녜스 바르다 감독에게 따지는 게 더 먼저일 수도 있습니다.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도 결국엔 클레오가 의사의 괜찮다는 말을 듣고 끝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화와 제 이야기의 절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번 글이 탄생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데요.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가 ‘5시부터 7시까지’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6시 반’에 괜찮다는 말을 들으며 90분 만에 끝나는 것처럼, 제 이야기 역시 목요일까지인 줄 알았지만 수요일에 예고 없이 전화를 받으며 끝나니까요. 거기에 더해 결말의 내용은 극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결말, 그 과정이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한 번 적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철홍>은 막을 내리고..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가 한 편 더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프로게이머 알람 선수의 영화입니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생각했을 때, 저는 알람 선수를 떠올렸습니다. 알람 선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어워드의 이름 앞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지금 죽으면 내 이름이 어디에 남게 될 것인가 상상해보았습니다. 혹시 ‘김철홍-씨네21 영화평론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태껏 받은 상이 이것밖에 없어서 한 번 적어 보았습니다. 상을 더 받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고, 기분이 한결 더 나아졌습니다.
클레오는 친구의 차를 타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닙니다. 클레오가 얘기합니다. “거리엔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야 해. 삐아프 가, 아즈나부르 거리(Piaf Street, Aznavour Avenue). 그 사람이 죽으면 다시 이름을 바꾸고.” 클레오가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붙이고 싶었는지, 어딘가에 붙이고 싶기는 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독 바르다는 그 이름을 영화의 제목에 붙여 주었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누군가가 내 이름을 써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