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예 웨스트는 반박의 여지없이 세계 최고의 뮤지션 of 뮤지션입니다. 자기 자신도 그 사실을 완전히 믿고 있는 사람이며, 심지어 그는 자기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2020년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다음 대선에도 역시 출마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다큐가 나온다고 했을 때, 분명 칸예 웨스트의 엄청난 자뻑이 들어간, 자신이 이뤄낸 대단한 업적들을 기리거나 혹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그러한 다큐멘터리를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죠.
그런데 이 다큐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일단 이 다큐멘터리는 칸예의 시선이 아닌, 칸예의 오랜 친구 쿠디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쿠디는 칸예가 아직 유명하지 않을 때 칸예의 능력을 알아보는데요. 그래서 칸예가 어디까지 성공할지 그 과정과 끝을 담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칸예를 따라다닙니다. 재밌는 것은 아직 첫 앨범도 내지 않은 ‘덜 유명한 칸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아직은 다큐멘터리를 찍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 칸예가 그걸 승낙하고 항시 카메라를 따라다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에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카메라 뭐 하는 거냐”고 묻는 다른 사람들의 질문입니다. 그중엔 진짜 그 용도가 궁금해서 묻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몇몇은 마치 대스타처럼 카메라를 대동하고 다니는 칸예가 우스워서 비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지금의 칸예였다면 아무도 이걸 왜 찍는 거냐고 묻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칸예는 그런 질문과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칸예가 자신의 첫 앨범 <칼리지 드랍아웃(The College Dropout)>을 발매한 것은 2004년인데요. 3부작 중 절반은 칸예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 음반 제작사의 관계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랩을 하는 등의 셀프 홍보를 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금의 그 건방진 칸예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면서, 동시에 나도 진짜 열심히 나 자신을 홍보하고 다녀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뉴스레터 첫 연재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칸예 웨스트 다큐 이야기를 다룬 까닭이 있습니다. 칸예의 2001-2004년의 모습이 지금의 제 시기와 겹쳐보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어딜 감히 칸예랑 너를 비교하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한 상태인 것만큼은 같으니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칸예 웨스트는 남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끝까지 믿고 카메라를 계속해서 켜두게 했다는 것입니다.
철홍은 반면 그동안 자기 자신을 믿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말과 글이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까 신경쓰느라 아무 도전을 하지 않은 채 많은 시간을 낭비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낸 칸예를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제 나를 믿고 나를 찍어보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뉴스레터는 사실 편지가 아니라 카메라입니다. 더 정확히는 아무도 안 찍어줘서 내가 나를 찍는 셀프 카메라입니다.
다시 한 번 안녕하세요. 김철홍입니다. 매주 여러분께 김철홍의 일주일을 보내드립니다. 부디 저의 쿠디가 되어 저의 활약을 지켜봐주시기를.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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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말씀
1. 원래 원데이 원무비 제목의 유래에 관해 쓰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어차피 크게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아서 바꾸었습니다. 아마 다음주 아니면 다다음주? 언젠가 꼭 쓸게요,,
2. 최근 재밌게 본 영화는 <더 배트맨>과 <레벤느망>입니다. 다음주는 두 영화에 대한 이야기 혹은 2월에 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것 같습니다. (변동 가능성 多)
3. 최최근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는 <소년심판>(넷플릭스)과 <석세션>(웨이브)입니다. 둘 다 1화만 봤는데 앞으로 계속 더 볼 것 같네요. <소년심판>은 유명해서 어차피 다 보실 것 같아서, 더 같이 보자!고 하고 싶은 작품은 <석세션>입니다. <왕좌의 게임> 이후 HBO의 최고작이라는 소문이.
4. 구독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특히 커피 두 잔 마시라고 가입비를 훌쩍 넘는 금액을 넣어주신 몇 분들께.. 그분들 이름 언급하고 싶지만 허락을 못 받았기 때무네.. 허락해주시면 다음 메일에라도 다시 한 번 감사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5. 엄마한테 비밀 지켜주세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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