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또 하나의 발견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의 불완전성입니다. 저는 <동주>를 보고 영화는 완벽할 수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주>를 통해 사람 윤동주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되었지만, 한편으론 이게 결단코 윤동주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영화는 절대 한 인간의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크리스토퍼 놀란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카메라와 1억 달러 제작비를 들여 세 시간이라는 러닝 타임 동안 한 인간의 몇 년을 보여줘도, 우리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의 단면을 간신히 헤아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제작비의 1%도 못 미치는 돈으로 만들어진 <동주> 역시 그것에 성공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동주>가 특별한 이유는 자신이 그것에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자신이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윤동주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해 봤지만, 과연 이것이 윤동주의 전부일까? 아니 과연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서 완벽히 안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다 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또 다른 오해는 아닐까?’
그래서 제 글의 제목은 ‘동주’가 아닌 ‘사람’입니다. (<동주>라는) 영화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까요. 그러나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이 영화에서 발견했던 것이구요, 이 좋은 발견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주>에 관한 제 글 또한 마무리됩니다. 그 마무리의 일부분을 동봉해 드리며, 오늘의 레터를 마무리합니다.
첫 번째 동주, 두 번째 동주, 세 번째 동주, 네 번째 동주. 그런데 과연 이게 끝일까? 어쩌면 누군가에 대한 오해는 이렇게 셀 수 있는 가짓수로써 누군가를 규정한 뒤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착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