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삼각형>의 2부에 등장하는 한 노부부는, 자신들의 발앞에 굴러온 수류탄을 보더니 반가움을 참지 못합니다. 이제 곧 터질 수류탄을 반가워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으실 것 같은데요. 설명을 드리자면 그 노부부는 사실 수류탄을 제조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수류탄을 팔아 엄청난 부자가 된 뒤, 거대한 호화 유람선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것이었죠. 바로 그때 불현듯 자신들의 회사 로고가 박힌 수류탄이 또르르르 굴러왔던 것입니다. 어? 이거 우리 회사 거잖아? 맞지? 근데 이게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어? 안전핀이 풀려 있네?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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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개봉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앞서 설명해 드린 장면과 같은 코믹스러운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작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이기도 한데요. 수상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국내 개봉 후의 평가 역시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을 더 잘 드러내는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쉽게 말하자면 모든 인간들을 조롱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부자와 자본주의만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과 공산주의자 역시 조롱하고 있습니다. 남자를 비판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자도 비판합니다. 거기에 더해 타인을 까는 것뿐만이 아닌 자기 자신 역시 까는 영화입니다. 감독은 그 모두를 호화 유람선에 태운 뒤, 거기에 수류탄을 터트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지는 영화의 3부에선 모든 것이 리셋된 상태에 놓인 인간들의 군상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관객은 어떤 특정한 사회 속의 인간의 모습이 아닌,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를 '원시 상태'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저는 그것이 충분한 표현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왜냐면 이미 자본 계급 사회를 맛본 사람은, 다시는 '원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슬픔의 삼각형>의 3부 속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도 원시도 아닌 제3의 상태에 놓인 인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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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가 별로인 사람들이 각자 어떤 이유로 이 영화를 싫어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루벤 감독의 난사가 어쨌든 자신을 아프게 한 것이 싫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게 모두를 향한 난사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 부정확함과 부족한 창의력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난사는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사방에 갈기는 것이기에, 정밀한 저격보다는 덜 정교한 작품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누군가는 이 영화가 자신을 따갑게 해서 싫을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유치해서 싫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영화의 난사가 좋았습니다. 아니 반가웠습니다. 모두를 따갑게 만드는 이 수류탄 같은 영화가 제 앞에 떨어진 것이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 수류탄의 폭발이 저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상상을 촉발시키는 것이 좋았습니다. 유람선이 아니라 세상이 폭발한다면?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의 위치가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면?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된다면? 선장이 청소부가 되고 청소부가 선장이 된다면?과 같은 상상들이 연쇄적으로 다음 폭발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웃음 역시 계속해서 터지고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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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얘기지만 제가 이 난사가 좋았던 이유가, 저의 상상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 한 군데에 있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 저는 남자입니다. 남자이기만 하고 여자는 아닙니다. 선장과 청소부 중에선 청소부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청소부에 가까운 사람이지, 선장인 사람은 아닙니다. 이렇게 저는 한 쪽에 속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제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상상합니다. 그 상상이 물론 잘못되거나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상은 제 자유인 것이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내 상상이 맞다고 강요만 하지 않으면 괜찮겠죠.
그러니까 제 생각엔 이 영화의 난사가, 이 영화가 발사한 모든 총알이 저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게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본래 한 명의 사람이라면 총알의 몇 발만 맞았어야 했는데, 제가 제가 아닌 다른 사람까지 상상하는 바람에, 모든 총알에 몸을 관통당한 셈인 것입니다. 누군가 이 영화를 저와 한 영화관에서 보셨다면, 몸이 벌집이 된 채(?) 간신히 걸어 나오는 제 모습을 목격하셨을 거구요. 영화를 보며 간만에 수류탄을 직격으로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오늘까지 5만 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하셨다는 소식이 들리는데요. 늦기 전에 극장에서 한 번 관람해 보시는 것도, 좋은 피서 활동이 될 것 같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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