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를 잃은 매니는 저 멀리 길의 끝으로 향하는 뒷모습으로 영화에서 퇴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신은 그런 매니를 어여삐 여기어, 다시 한번 영화로 불러냅니다. 때는 20여 년이 지난 1952년. 한동안 할리우드와 관계없는 삶을 살았던 매니가 다시 할리우드를 찾습니다. 이제 그가 운반해야 할 것은 없고, 그러므로 그는 할리우드의 문 앞에서 더 이상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오프닝에서처럼 한 경비원이 매니를 제지합니다. “통행증이 있나요?(들어가고 싶나요?)” 매니가 답합니다. “아니요. 그냥 구경만 할 겁니다.” 이제 매니는 할리우드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곳에서 계속 일했더라면’, ‘그 길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버전의 이야기는 매니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할리우드 주변의 길을 걷던 매니는 우연히 한 영화관을 발견합니다. 그리곤 ‘영화 한 편쯤은 괜찮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영화관에 들어갑니다. 스크린엔 영화 역사상 최고의 뮤지컬 영화라고 평가받는 1952년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가 상영 중입니다.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할리우드 시기의 뜨고 지는 스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내용은, 실제 <바빌론>을 만든 데이미언 셔젤 감독에게 주요한 모티프를 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셔젤은 자신이 창조한 매니에게, 이 영화가 있었기에, 네가 있을 수 있었다는 말을 전합니다. 아니 이는 사실 매니 덕분에 이 영화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매니가 먼저인지 영화가 먼저인지에 대한 개념이, 파티가 먼저인지 영화가 먼저인지에 대한 개념과 함께 뒤엉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뒤엉켜 있는 너무나도 기이한, 하지만 동시에 눈물 나게 아름다운 모양의 무언가에 ‘영화’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눈물을 흘리던 매니는 희미하게 웃습니다.
<바빌론>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길을 놓는 영화입니다. 길을 놓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것입니다. 첫째로는 자신이 놓은 길을 통해 스스로 과거의 무언가를 더 이해해 보기 위해서일 것이고, 두 번째로는 그 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안내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바빌론>은 저를 1920년 대의 할리우드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미 완결된 과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추가해 보는 것에 흥미를 못 느끼던 저에게, <바빌론>은 그런 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다시 길을 떠나보지 않겠냐는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바빌론>을 본 다음 날, 무언가에 홀린 듯 <라라랜드>를 한번 틀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화 <라라랜드> 역시 길에서 시작됩니다. 햇볕이 쨍쨍한 도로 위엔 차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카메라는 수많은 차를 지나 한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노래가 시작됩니다. 노래는 첫 가사는 “I think about that day.”입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버린 그날들을 향해 길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