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주간입니다. 아직까진 그렇게 많은 관객이 들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박스오피스 1위는 <탑건: 매버릭>이네요), 적어도 저의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에는 날마다 많은 사람들의 <헤어질 결심> 관람 인증과 후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이 영화와 감독 박찬욱을 극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정도의 감흥을 받지 못한 저는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정말
[NO.18]
<헤어질 결심> 주간 : 부사와 형용사
2022년 7월 2일
정말 화가 나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 쓰면 재밌고 자극적인 글이 될 것 같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영화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헤어질 결심>만큼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예술 같다’는 생각이 드는 카메라 움직임과 분명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대사와 소품들까지. 전체적인 완성도는 두말할 것 없구요. 개인적으론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나 상황 등을 따다가 여러 편의 글들도 완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 나온 김에 몇 개 예시를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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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인 사건이 좀 뜸하네.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 최근 길게 이어지는 장마 기간 동안 무력감을 자주 느꼈습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비가 오니까 그냥 밖에 나가는 게 싫고, 집에만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더라구요. 날씨 때문에 일을 그르칠 뻔했던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는데요. 연락이 되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렸던 적이 있습니다. 100% 확신은 없지만 그 사람이 지나갈 예상 동선에서 그 사람을 기다려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는데요. 그때 갑자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우산을 써야 했고, 우산 때문에 사람의 얼굴을 잘 확인할 수 없어 놓칠 뻔했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그 사람을 기다린 이유가 당연히 ‘살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날씨가 나와 그 사람의 만남이라는 ‘사건’의 발생 여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2. 해준은 서래에게 남편의 시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 드릴지 묻는다. [말로 묘사 vs 사진으로 보여줌]에서 서래는 사진으로 직접 보는 것을 선택한다. -> 내가 서래였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모습을 차라리 안 보는 것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사랑에 가까운 것일까요. 물론 서래는 그이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딱 들어맞는 질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래가 사진을 선택하는 그 순간만큼은 직접 보는 것이 사랑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습니다. 그 장면이 나올 즈음에 영화는 땅에 누워 있는 시체(남편)의 시점을 잠깐 보여주는데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만약 시체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걸 거부하면 서운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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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침내, 단일한, 꼿꼿한 -> <헤어질 결심>은 부사나 형용사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어나 동사, 그러니까 ‘누가’나 ‘무엇’보다, ’어떻게’를 표현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건 사실 대부분의 ‘박찬욱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이기도 합니다. 인물들이 무엇을 해서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는지에 대한 것보단, 그 과정을 어떻게 겪었는지, 말하자면 그 과정이 아름다웠는지, 끔찍했는지, 무서웠는지, 아이러니했는지,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어떻게를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누가/무엇’을 새롭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헤어질 결심>을 고평가 하지 않은 까닭은 이번의 ‘어떻게'가 이전의 박찬욱 영화보다 더 새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가장 눈에 띄게 새로운 것은 탕웨이라는 얼굴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서래라는 인물을 외국인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술적인 대답이 아니어서 민망한데, 탕웨이와 같이 작업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참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탕웨이가 연기한 서래라는 인물은 분명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우리가 영상으로 직접 봐야지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어떻게’보단 쉬운 선택이라는 점에서, 덜 ‘예술적’이라는 생각입니다.
<헤어질 결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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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번 주는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 한 편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SS 라자몰리 감독의 <RRR>이라는 영화입니다. RRR은 각각 rise, roar, revolt이고, 인도 영화입니다. 인도영화, 라고 하면 벌써부터 손사래를 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요. 저 역시 그랬던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그런 장벽을 넘어설 정도로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다른 인도영화랑 달라, 이건 인도영화가 아니야, 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 집단 댄스&노래 장면이 어김없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장면만을 제외하면 정말 짜릿한 경험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작비가 약 7천5백만 달러가 들어간 대작품이며, 라자몰리 감독은 인도 영화계에서 그냥 냈다 하면 항상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기록적인 감독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알든 모르든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대충 이렇습니다. 때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지배를 당하던 시기입니다. 어느 날 영국의 한 고위층 인물이 인도의 작은 마을에 있는 한 아이를 마음대로 '구매'해갑니다. 이를 구출하려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은 그 고위층 인물 소속의 경찰입니다. 그는 엄청난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인도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진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것은 두 남자가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정체를 알기 전에 우정을 쌓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둘은 서로를 죽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떠신가요. 쫌 끌리시나요? 저 역시 세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보고 꽤 오랜 시간 볼까 말까를 망설였던 것 같은데요. 그냥 속는 셈 치고 일단 맛보기로 틀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러면 어느새 끝까지 두 남자를 응원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춤과 노래는 잠깐 견디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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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2. 넷플릭스에 있는 <러브, 데스, 로봇> 시즌3의 <히바로>라는 작품입니다. <러브, 데스, 로봇>은 서로 이어지지 않는 여러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들로 이루어진 시리즈인데요. 그만큼 완결적인 이야기보다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형식이나 비쥬얼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중 <히바로>는 감각적인 영상과 드라마틱한 서사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군인 남자와 황금으로 만들어진 피부를 갖고 있는 여자. 참고로 피가 많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마치며.. 머지 않아 피가 많이 나오는 영화들을 곧 보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7월 7일부터 17일까지,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가 진행됩니다. 제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포프란: 사라진 X를 찾아서>라는 영화인데요. 저의 최애 영화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연출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신작이기 떄문입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구요. 아니 사실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한 번 저에게 신뢰를 준 감독이 있다면, 다음 작품은 그냥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감독이 있으신지요. 그런 감독이 없다면, 혹시 그냥 여기서 추천한 영화라면 아무 의심 없이 그냥 봐버리는 그런 영 화 뉴 스 레 터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너무 답정너였다면 죄송하구요 :) 다음 주에도 좋은 영화 이야기와 함께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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