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가정 하나로 시작하는 글. 여러분에게 1년 동안 아이맥스관에서 딱 한 편의 영화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이 영화를 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개봉하는 영화 <탑건: 매버릭>입니다. 기자들과 영화업계 관계자들만이 참석한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정말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끝났을 때나 나올 법한 박수가 터졌었는데요. 제가 가본 언론 시사회에서 이런 박수는 처음이었습니다. 박수에 박한 저는 박수까지는 치지 않았지만, 영화가 딱 끝났을 때 차오르는 벅찬 감동과 함께 눈앞에 다섯 개의 별이 보였던 기억만큼은 정말 생생합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고 났을 때와 맞먹는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주 원데이원무비에 더 적어볼 예정입니다.
[NO.16]
코치가 필요해
2022년 6월 18일
약간의 예고로 <탑건: 매버릭>에 관한 간단한 정보만 말씀드리면서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영화는 1986년에 토니 스콧 감독이 만든 <탑건>의 후속작 격인 작품입니다. 두 영화는 같은 세계관, 같은 인물, 거의 같은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로, <매버릭>의 온전한 감상을 위해 <탑건>을 미리 보시고 가시는 것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안/못 보고 가실 분들을 위해 <탑건> 이야기를 조금 해드릴게요. <탑건>은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훈련학교의 별칭이자, 가장 뛰어난 파일럿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쉬운 속된 말로 표현하면 ‘파일럿 1짱’.. 정도가 될 수 있겠네요. 1편은 젊은(그래서 완전 잘생긴) 톰 크루즈가 연기한 매버릭이 그곳을 졸업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습니다. 잃음으로써 얻는 것이 있기도 하구요. 아무튼 여기서 ‘무엇을 잃었는지’가 1편 서사의 핵심인데, 그 잃음의 여파가 이번 새로 개봉한 2편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그게 뭔지 모른 채 보셔도 <매버릭>을 ‘즐기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즐기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1편을 꼭 보고 가셔야 할 것입니다.
<매버릭>의 주요 내용은 ‘코칭’입니다. 이제 베테랑이 된 매버릭이 똑똑하고 신체 능력이 뛰어난 새로운 조종사들을 훈련시키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무조건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는 젊은 친구들이 나이 든 베테랑 선배에게 한 방 먹는 순간입니다. 요즘 말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발휘된달까요. 아무리 다른 능력이 뛰어날지라도, 경험으로부터 습득한 지혜에는 못 당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코칭’ 영화에 있습니다.
|
|
|
최근 개봉한 영화 <브로커>에도 코칭이 있습니다. 주연 배우인 송강호가 칸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엄청난 이슈가 된 영화인데요. 배우와 감독의 이름값에 비해 작품의 완성도가 아쉽다는 평가가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많이 아쉬웠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었거든요. 최고까진 아니지만 항상 평균 이상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감독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번 영화에서는 감독의 클래스 자체가 적어도 두 단계는 내려가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감독 자신의 전 작품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설정이 많이 보였던 것이 가장 아쉬웠던 부분인데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은, 많은 사람들이 <브로커>를 감독의 예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빗대어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브로커>를 한 줄 요약한다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엄마 소영(아이유)이 엄마 교육을 받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어된’이라는 제목이 꽤 잘 어울리기는 합니다만, 비슷한 제목이 떠오른다는 것이 절대 장점일 수는 없겠죠. <그 아 된>이 없었다면 평가가 조금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네요. 하지만 이 역시 의미 없는 이상한 가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한 것은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엄마 소영의 이야기인데 제목은 ‘브로커’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브로커는 죄질이 나쁜 범죄자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버린 주인이 없는 아이라고는 하지만, 그 누구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그 아이를 훔친 뒤 거액의 돈을 받고 다른 부모에게 팔아넘깁니다. 상현(송강호)은 자기 자신을 사랑을 전달해 주는 신 ‘큐피드’라고 표현하지만, 다시 한번 누구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인데 마치 신처럼 제멋대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에 빠지게 한다는 점에서 나쁩니다. 감독이 나쁜 유사 가족 집단을 제목(주인공)으로 삼은 것 역시 감독 전작(<어느 가족>(원제 : <좀도둑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
|
|
아무튼 감독이 제목을 ‘소영’이 아닌 ‘브로커’로 한 의도는 개인(엄마)보다는 이 집단(가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소영이 엄마 교육을 받는 이야기’에서 ‘소영’보다 ‘교육을 받는’에 조금 더 힘을 준 것이지요. 바로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코칭입니다. 상현과 동수(강동원), 그리고 이들을 쫓는 형사 수진(배두나)까지 모두 소영이 좋은 엄마가 되도록 코칭하는데, 문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것이 좋은 코칭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코칭이란 무엇일까요. 물론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허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가 보여주는 코칭이 와닿지 않았다, 이렇게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정확한 것은 제가 ‘좋은 코칭’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일 겁니다. 그 정의를 내린 뒤 거기에서 벗어난 브로커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이것 때문에 이 영화의 코칭은 좋은 코칭이 아니었다, 라는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 또한 좋은 코치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좋은 코칭의 정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코칭이 느껴진 다른 영화를 추천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좀 영화 평론가 같은가요. 사실 영화 평론가가 영화 추천까지 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평론가 개인은 그저 개인이 본 영화들에서부터 비롯된 궁금증을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일 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생각을 전염시키는 것이 주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추천한 영화를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기분이 좋기는 합니다. 다른 영화 추천한다면서 갑자기 괜한 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는 이것이 제가 말씀드릴 영화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 샌들러가 주연한 영화 <허슬>입니다.
|
|
|
스탠리(아담 샌들러)는 NBA 프로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76er)의 스카우터입니다. 스카우터지만 언젠가 코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꿈을 위해선 구단주에게 확실한 점수를 딴 뒤 승진해야 하는 것이고, 그 승진을 위해선 당연히 좋은 스카웃 실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스페인의 한 일반인 청년 보 크루즈(후안초 에르난고메스)를 발견하고, 그를 NBA 구단에 입단시키려 노력합니다. 그 시도는 당연히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잘 될 것 같다가도 안 되고, 이번엔 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나 이를 망치고, 그 과정에서 스탠리와 보의 갈등도 생기고, 그러면서 스탠리는 스탠리대로, 보는 보 대로 개인의 문제도 심화되는, <허슬>은 그런 측면에서 어쩌면 그리 특별하지 않은 영화일 수도 있지만, 아담 샌들러의 특별한 연기와 디테일한 각본의 힘으로 인해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제 인생 영화이기도 한 <언컷 젬스>와도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언컷 젬스> 역시 아담 샌들러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면서 동시에 NBA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지의 영역에 ‘베팅’을 한다는 점이 또 하나의 절묘한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언컷 젬스>에서는 아담 샌들러가 농구 경기에 돈을 걸고, <허슬러>에서는 “내 인생을 걸고 도박했어요?”라는 대사를 듣습니다. 앞서 이 영화가 ‘영화 추천’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했었는데요. 도박과 영화 추천, 혹시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제가 바로 원데이 원무비 5호에 ‘도박을 즐기는 영화평론가’라는 제목으로 적었던 글에 있던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허슬>의 주인공 ‘스카우터’ 역시 선수를 ‘추천’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내 추천을 사람들이 좋아하면 기분이 좋다는 점에서 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은 코칭의 예라는 생각이 든 것은, 스탠리가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스탠리는 보를 좋은 선수로 만들기 위해,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보에게 개인 교습을 합니다. 이 역시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같은 복싱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인데요. 보에게 달리기를 비롯한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보의 신체적 능력이 상승될 뿐 아니라, 둘의 유대감, 신뢰감도 함께 쌓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번뜩이는 특별한 장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대사 한두 개가 남기는 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스탠리가 자신의 상처를 얘기하는 장면입니다. 스탠리의 왼쪽 손엔 실제로 큰 상처가 있는데요. 그 상처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생긴 것인데, 그 때문에 스탠리는 손뿐만 아니라 평생 꿈 꿔왔던 목표까지 잃게 됩니다. 이 얘기를 들은 보는 자신만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코치 역시 힘든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이렇게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생각해 보면 <브로커>에는 이런 장면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브로커>는 각 인물이 사연이 있다는 것을 대사 한 마디나 장면 하나로 표현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상현이 자신의 딸과 디저트를 먹는 장면이 있습니다. 상현은 이 자리에서 딸로부터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고 낙담합니다. 이 장면은 물론 상현 개인으로선 중요한 장면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그렇게 엄마가 된다’는 영화의 큰 서사를 놓고 보면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이 아픔을 다른 멤버들과 (의도적이든 의도치 않든)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면 조금 더 좋은 코칭이 됐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허슬>의 두 번째 장면도 그렇게 특별한 장면은 아닙니다. 또 다시 찾아온 위기로 인하여 보와 스탠리는 이제 곧 헤어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보를 공항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보가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반드시 갚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스탠리가 이렇게 답합니다. “자네를 코칭하며 내 인생 최고의 한 달을 보냈어.” 그 말을 들은 보의 감동받은 표정, 그에 반해 담담한 스탠리, 곧이어 주먹을 맞부딪히는 둘. 그리고 그 뒤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조금 감동적인 배경 음악이 깔립니다. 정말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뻔한 연출들이지만 저는 왜 찡했을까요. 왜 둘 다 뻔한데 <허슬>은 찡하고, <브로커>는 얼굴이 찡그러졌을까요.
모름지기 프로 영화 평론가라면 그 이유에 대해 냉철한 분석을 해내야 하는 것이겠지만, 저는 아직 그렇게는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성을 넘어선 감정의 영역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나. 비정상인가요? 다음 주에 다룰 <탑건: 매버릭>은 이성도 감정도 마비시키는 영화입니다. 과연 어떤 글을 써낼지, 제 자신이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사실 그 누구보다 코치가 필요한 건 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허슬>에 더 마음이 갔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 딱 한 편의 영화만 볼 시간이 있으시다면, <허슬>을 추천드립니다.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