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큐어>에 관한 토크토크를 하고 왔습니다. <큐어>는 7월 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인데, 이 영화는 25년 전인 1997년에 공개된 영화이지만, 국내 정식 개봉은 이번이 최초입니다. 토크는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진행하는 ‘전주 아트톡’ 행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은 작년 11월에 <Trans-Continental-Railway>라는 영화의 ‘감독과의 대화' 진행을 하러 방문을 했었던 곳인데요.(원데이원무비 9호에 관련한 내용을 적은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익숙한 장소이긴 했지만, 이번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무엇보다 저 혼자 단독으로 시간을 채운 행사가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인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제 나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할 말을 꼼꼼히 준비를 해갔어요. 그리고 토크 시간엔 그냥 옆에 노트북을 펴놓고 준비한 말을 그대로 읽다시피 해버렸는데요. 그중 토씨 하나도 다르지 않게 준비한 그대로 읽은 부분은 첫인사입니다.
[NO.20]
그냥 잘 모르겠다고 말해버리기
2022년 7월 16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최근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최신 영화들이 여러 편 개봉한 시기인데, 25년 전인 1997년도에 공개된 영화 <큐어>를 보러 극장까지 찾아오신 관객분들을 뵙게 되어서,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친구를 만난 듯이 좀 반가운 기분입니다.
저는 경기도에 사는 사람입니다.(전주 분들에게 멀리서 온 사람인 거 어필) 규모가 큰 상업 영화들은 그냥 동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오늘 보신 <큐어> 같은 작가주의 감독 영화, 혹은 독립/예술영화들은 동네에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게 되면,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서울에 있는 영화관들을 찾아가서 보고 오는, 그런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습니다.
저 같은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적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루에 두 타임, 많으면 세 타임 정도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상영관에 딱 들어가면 대충 열 명 남짓한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은 걸 볼 수 있는데요. 저는 그분들이 그렇게 반갑더라고요. 그런 영화들은 보통 평일, 직장인 분들이 찾아오기 힘든 시간대에 상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 계신 분들을 보면서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구요. 자주 다니다 보니 가끔은 눈에 익은 사람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자주 보이던 사람이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막 아쉽기도 하고요.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조금 아차 싶었던 포인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이날 영화관에 거의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많아도 열 분 정도 오시지 않을까 싶었었는데요. 왜냐면 실제로 지난 11월엔 다섯 분 정도밖에 계시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때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좀 더 우리끼리 으쌰으쌰하자는 느낌으로 적은 첫인사였는데, 처음부터 꼬여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준비한 것들을 소화하였는데(관련한 내용은 아래에 이어 적겠습니다),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관객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질문 또한 예상보다 많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해야 하는 시간은 미리 준비한 것들로 채울 수 있었지만, 관객 질문에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나온다면 어색한 상황이 연출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제 다리를 떨게 만들었습니다. 원래 다리는 떠는 편이지만, 더 심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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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큐어>는 미스테리한 영화입니다. 설명되지 않는 공포가 영화의 핵심이며, 그 ‘설명되지 않음’의 힘으로 걸작의 반열에 오른 영화이고, 그렇게 25년을 버티어 내어 마침내 국내에 정식 개봉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난해한 영화인지 대충 느껴지신다면, 저의 빠르게 떨리는 다리를 조금은 이해해 주실 것도 같습니다. 가뜩이나 실수할까봐 불안한 상태인데, 하필 영화 자체가 극악 레벨의 불안정한 영화라는 점이 저를 또다시 불안하게 만드는 구조인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점은, 이 영화는 애초에 설명이 불가능한 영화다, 라는 것이 제 이야기의 주요 내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잘 모르겠다”고 말해도 어느 정도 변명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큐어>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어느 날 최면으로 사람을 홀리게 만들어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한 청년 마미야가 나타나고, 이를 다카베 형사가 추격합니다. 다카베 형사는 마침내 마미야를 체포하게 되지만 딱히 해결되는 것이 없습니다. 마미야가 어떤 수법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건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고, 무엇보다 마미야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이고 다니는지, 그 동기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취조실에서 마미야는 다카베에게까지 그 최면을 시도합니다. 마미야는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 때 제 입장에서 정말 받고 싶지 않은 질문, 포브스 선정 청년 특히 취준생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 1위에 오른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요. 그 질문이 마침내 다카베에게까지 이르게 됩니다. 다카베가 그 질문을 받는 순간이 이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마미야가 저지르는 살인 행각은 마치 지진과 테러 같은 재난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피해자로 선택받는 것에 아무런 이유가 존재하지 않고, 그 누구도 무작위로 선택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공포는 이러한 특징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이 영화의 공포가 2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2022년 현재에도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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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가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나온 당시의 일본 시대 배경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1990년대는 일단 일본 경제의 거품이 붕괴되어 모든 사람이 희망을 잃은 채 살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한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의 비슷한 예로 IMF 시기를 떠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버텨내던 도중, 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 지역에서 강도 6~7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해 6400여 명의 시민이 사망을 하고, 당시 환율로 10조 엔의 재산 피해를 보게 됩니다(고베대지진). 태어나서 지진을 한 번 경험해 볼까 말까 한 우리의 입장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공포라고 생각합니다.
지진의 여파를 채 수습하기도 전인 95년 3월, 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옴진리교의 신도들이 도쿄 지하철에 ‘사린’이라는 맹독 가스를 퍼뜨리는 테러를 저지른 것입니다(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심지어 시간은 아침 8시. 직장인들이 한창 출근하는 바쁜 시간대를 노렸다고 합니다. 저는 지진도 지진이지만 이 사건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는데요. 실제로 테러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일부 연구자 중에는 이 사건을 9.11 테러보다 더 비중 있게 여기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14명이 사망하고, 6300여 명이 부상당했다고 하는데, 지진에 비해선 확실히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그 참혹감을 단순히 숫자로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겠죠.
고베대지진과 지하철 테러 사건의 공통점은 둘 다 ‘랜덤’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것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고, 그러므로 누구나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마치 <큐어>의 마미야 같습니다. 그래서 <큐어>가 정말로 무서운 이유는 <큐어>에 마미야뿐만 아니라, 앞에 말한 그러한 사건들이 벌어졌던 90년 대 일본의 풍경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더 무서웠던 것은, 사람들의 질문이었습니다. 무서운 질문이 무(無)질문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영화 이야기의 디테일한 부분을 묻는 질문을 받으니, 잠깐 정신이 아찔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영화 제목은 무슨 의미인가요? 마지막 아내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마미야가 다카베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냥 잘 모르겠다고 답해버렸습니다. 물론 아는 부분에 대해서는 성심성의껏 말씀드렸지만, 놓친 부분이나 정말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누구라고 생각할지, 어떤 평론가로 생각하실지, 제가 그분들을 반가워했던 것만큼 그분들도 저와의 첫 만남이 끝까지 반가운 채로 마무리됐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겠지만, 그냥 솔직한 제 생각을 다수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털어놓은 것 자체가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또 언제 이런 자리가 다시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 순간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준비부터 더 철저히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요!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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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SOON
영화 <외계+인 1부>에 관한 재밌는 콘텐츠가 조만간 공개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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