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리차드>는 영화 제목처럼 리차드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일반인이었던 리차드가 킹이 되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킹이 된 방식이 독특합니다. 다름 아닌 자신의 딸 둘을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로 키워낸 것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요. 저는 잘 몰랐지만 역사상 최고의 여자 테니스 선수로 인정받는 세레나 윌리엄스(1981년생)와 비너스 윌리엄스(1980년생) 자매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또 하나의 핵심 정보가 있는데, 이 영화는 블랙 무비입니다. 리차드는 가족 영화의 대가, 윌 스미스가 연기를 맡았는데요. 리차드가 애초에 ‘딸을 위대한 테니스 선수로 만들겠다’는 어마어마하고 황당한 계획을 세운 이유 자체가, 평범한 계획으로는 게토에서 시시각각 삶의 위협을 받으며 사는 흑인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리차드 가족이 살고 있던 LA 컴튼이라는 지역은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마약이 활발하게 거래되던 지역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총을 맞거나, 범죄자가 되거나, 약쟁이가 되거나’ 라는, 힙합 가사에 많이 쓰이는 표현이 실제로 펼쳐지는 곳입니다. 영화에도 그것이 일부 묘사되기도 하는데요. 그런 게토를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리차드의 모습은, 그 자체로 흑인의 삶이 얼마나 평등하지 못했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이 영화의 재미 포인트는 리차드의 그 집요한 ‘이렇게까지’를 구경하는 것입니다. 영화에는 리차드의 좌우명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You fail to plan, you plan to fail.” 계획 짜는 것에 실패한다면, 이는 곧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다. 직역해서 조금 어색한데 어쨌든 그만큼 계획의 중요성을 뜻하는 표현인데요. 리차드의 그 철두철미한 계획과 실행력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리차드는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기 2년 전부터 78페이지짜리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어릴 때 방학 계획표 짜는 것마저 부모님께 외주 맡겼던 저로선.. 앞서 말했듯이 참 ‘되고 싶은’ 주인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리차드가 문제적 인물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마냥 ‘킹’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왜냐면 딸의 입장에서, 자신은 그저 아빠의 게토 탈출 계획을 위해 사용된 것뿐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들이 정말 실력이 좋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 된 것이지, 만약 결과가 좋지 못했다면 아빠의 좋은 의도는 인정받지 못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딸들의 모습에선 그런 장면이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딸들을 비롯한 모든 가족은 아빠의 계획이 마치 자신의 계획인 것처럼 함께 움직입니다. 영화에 나오진 않았지만 아마 아빠와 엄마의 계획에 대한 충분한 설득과 대화의 과정이 없지는 않았을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실제 당사자들 또한 이에 대해 큰 불만을 표현한 적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비너스&셀레나 윌리엄스 자매들은 실제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